디지털 드로잉 연습을 어느 정도 했거나, 평소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그림으로 스티커나 엽서를 만들면 어떨까?” 거창하게 ‘이걸 팔아서 부자가 되겠어!’라는 마음보다는, 모니터 속에만 갇혀 있던 내 그림을 실제 물건으로 만져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에 가깝죠. 저 역시 11년째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막상 ‘내 굿즈’를 만들려니 멈칫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오늘은 굿즈 제작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그 막막했던 첫걸음의 기록을 공유해 보려 합니다.
1. 엽서? 스티커? 무엇부터 시작할까? (굿즈 입문 추천)
막상 굿즈를 만들기로 마음먹으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 장애가 옵니다. 아크릴 키링, 메모지, 마스킹 테이프… 하지만 초보자에게 가장 추천하는 건 역시 엽서와 스티커입니다.
제가 이 두 가지를 고른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 단가: 제작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 수량: 소량 제작이 가능한 업체가 많아 재고 부담이 적습니다.
- 리스크: 혹시라도 인쇄가 잘못되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마음이 덜 아픈(?) 품목이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고난도의 아크릴이나 패브릭 제품에 도전하기보다, 가장 친숙한 종이 인쇄물부터 시작하는 게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지름길입니다.
2. ‘그림’은 있는데 ‘파일’이 없다는 당혹감 (굿즈 제작 파일)
화면에서 보던 그림과 인쇄용 파일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그냥 PNG 파일 하나 보내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가 큰코다치기 십상이죠. 굿즈 제작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마주한 생소한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 CMYK: 화면용(RGB)과 인쇄용(CMYK) 색상 모드의 차이
- 재단선과 여백: 인쇄 후 잘려 나갈 부분을 고려한 작업 영역
- DPI: 인쇄 퀄리티를 결정하는 해상도 (최소 300DPI 이상!)
이 시점에서 깨달았습니다. 굿즈 제작은 그림 실력보다 ‘준비 과정’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을요. 내 그림을 인쇄 규격에 맞춰 다시 세팅하는 과정은 귀찮지만, ‘물건’을 만드는 프로의 자세를 배우는 아주 좋은 훈련이 됩니다.
3. 화면과 현실의 온도 차, ‘색감’ (굿즈 인쇄 색감)
가장 불안했던 지점은 역시 색감이었습니다. 아이패드 화면에서는 그렇게 화사하고 예뻤던 색이, 종이에 찍혀 나오면 칙칙해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죠.
특히 어두운 색상이나 채도가 높은 형광색 계열은 인쇄물에서 표현하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걸 알고 나니, 굿즈용 그림을 그릴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밝게 작업하거나 아예 인쇄 환경을 고려해서 컬러를 선택하는 등 그림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더군요.
4. 판매보다 중요한 건 ‘관점의 변화’ (굿즈 제작 경험)
사실 저는 아직 ‘판매’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이게 내가 만족할 결과물일까?”, “돈만 쓰고 예쁜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굿즈는 단순히 그림 실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상품화하려는 체력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판매를 하지 않더라도 이 고민의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림을 내 만족을 위한 **’작품’**으로만 보다가,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일 **’물건’**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처음 가져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남이 소장하고 싶은 그림 사이의 간극을 고민해 보는 것만으로도 디자이너로서 한 뼘 더 성장한 기분입니다.

마무리|굿즈는 결과보다 ‘경험’이 더 큽니다
아직 손에 쥐어진 결과물은 없지만, “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아,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라는 구체적인 깨달음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진짜 제작 버튼을 누르게 될 때, 지금의 이 고민 덕분에 훨씬 덜 막막할 테니까요.
굿즈 제작은 꼭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그림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기록하기 위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아주 멋진 선택지입니다. 좋은 경험이 되긴 하겠지만.. 아마 돈은 좀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크니 이 점은 꼭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