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서양화과) 4년 다니고 느낀 현실|등록금보다 중요한 것

안녕하세요, 11년 차 게임 아트 디자이너 리틀아틀리에입니다.

저는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연필을 잡았고, 남들 다 하는 입시미술의 치열한 터널을 지나 대학에 입학했죠. 미술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사교육비는 기본이고, 재료비에 전시비까지… 부모님의 등골이 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리는 학과 중 하나죠.

하지만 진짜 충격은 입학 후에 찾아왔습니다. 20년 전, 대학교 1학년 1학기 등록금 고지서에 찍힌 금액은 무려 480만 원이었습니다. 입학금이 포함된 금액이라지만, 지금 물가로 따져도 큰 이 돈을 내며 저는 4년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 비싼 등록금이 그만한 값어치를 하고 있는 걸까?”


1. 400만 원짜리 수업에서 ‘그림’은 배우지 않는다

많은 분이 미대에 가면 대단한 드로잉 기술이나 채색 기법을 배울 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서양화과(순수미술)의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 기술은 이미 끝났다: 학교는 여러분이 입시 미술에서 이미 기술적인 기본기는 닦고 왔다고 가정합니다.
  • 우리가 배우는 것은 ‘예술’이다: 학교는 기술자가 아닌 ‘아티스트’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철학, 미학, 작가 정신, 그리고 자기표현… 이런 것들이 수업의 중심입니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죠. 하지만 문제는 **’직업적 현실’**과의 괴리입니다.


2. 졸업장은 ‘리셋 버튼’일 뿐이다

냉정하게 말해, 서양화과는 취업을 책임지는 학과가 아닙니다. 졸업식 날 학사모를 던지는 순간, 여러분은 완벽한 ‘리셋’ 상태가 됩니다. 학교는 여러분이 밖에서 굶든, 다른 일을 하든 책임지지 않습니다.

11년 차의 뼈아픈 통찰: “학교는 여러분에게 ‘이제부터 무엇을 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등록금이 아까운 진짜 이유는 그 거액의 돈에 **’방향 제시’**라는 서비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미대생을 위한 현실 탈출 전략 3가지

토익책. AI생성
취준생의 기본 스펙이였던 토익.

만약 여러분이 지금 미대를 다니고 있다면, 졸업장만 믿고 있다가는 그대로 붕 뜨게 됩니다. 반드시 아래 3가지 중 하나를 결정하고 전략을 짜야 합니다.

  • ① 작가의 길을 갈 것인가? 작가로서 승부를 보겠다면 대학원 진학이나 전업 작가로서의 포트폴리오에 몰빵해야 합니다. 가장 험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길이죠.
  • ② 일반 취업을 할 것인가? (필수: 복수전공) 서양화과 전공만으로 일반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건 솔직히 무모합니다. 직무 연결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부전공으로는 부족합니다. 디자인, 마케팅, 경영, 경제 기타 등등 본인의 진로에 맞는 학과를 반드시 복수전공 하세요.
  • ③ 게임/콘텐츠 업계로 갈 것인가? 저처럼 게임 업계를 목표로 한다면, 학교 수업은 기본기로만 활용하고 **업계 기준(Industry Standard)**에 맞춘 포트폴리오를 학교 밖에서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네, 여기서도 또 사교육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준비하는것도 가능하지만 가능하면 초기엔 반드시 학원이나 과외를 병행하는것이 유리합니다.

4. 등록금은 아깝지만, 서양화과를 선택한 이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등록금은 아깝인가?” 네,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아깝습니다. 간단하게 최소한의 금액으로 환산해도 최소 3천만원은 넘은 금액이니까요. 3천은 지금도 큰 돈이지만 저건 20년 전 금액입니다.

그런데 업계진입을 한다는 전제하에 **”다시 돌아간다면 서양화과를 갈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의외로 **”Yes”**입니다.

서양화과에서 보낸 4년은 저에게 **’그림의 뼈대’**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게임 아트 디자이너로 11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툴 사용법이 아니라, 대학 시절 치열하게 고민했던 조형미, 색채의 이해, 그리고 사물을 관찰하는 깊이에서 나왔습니다.


5. 결론: 미대만 믿지 말고 ‘방향’을 믿으세요

케익상점 포트폴리오시트.
20년도 더 된, 포트폴리오 준비할 때 그렸던 그림.

미대 교육이 문제는 아닙니다. 미대 교육이 내 인생을 전부 책임져줄 거라 믿는 안일함이 문제입니다. 저는 제 진로를 너무 늦게 고민했습니다. 다니는 내내 막연함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일부러 현실을 외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밖의 기준이 얼마나 냉혹한지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죠.

만약 제가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학교 수업은 탄탄한 기본기(인풋)로 삼고, 동시에 시장의 요구사항(아웃풋)을 파악해 훨씬 일찍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등록금보다 중요한 건 여러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방향’**입니다. 이 방향을 빨리 잡는 사람일수록 400만 원이라는 돈을 ‘매몰 비용’이 아닌 ‘투자 비용’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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