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 디지털 드로잉 수업, 이런 아이에게는 추천하지 않아요

아이 수가 많진 않지만 디지털 드로잉 수업을 한지도 6개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학부때 수 년간 미술 학원 강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사회인이 된 후에 수업을 해보니 처음 생각보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라 만족하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가 패드만 붙잡고 사는데, 차라리 그림이라도 배우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물론 디지털 드로잉은 시기와 성향만 잘 맞으면 아이의 창의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를 직접 가르쳐보니, 분명히 지금 당장은 디지털 드로잉이 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모님들이 결정 전 꼭 고려하셔야 할 ‘솔직한 가이드’를 드려보려 합니다.


1. 디지털 드로잉이 나쁜 게 아닙니다

먼저 오해하지 마셔야 할 점은, 디지털 드로잉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아이마다 맞는 **’시기’**와 **’성향’**이 다를 뿐입니다. 제가 이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너무 이른 시작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련 글 보기: [아이 디지털 드로잉 시작 시기|몇 살부터가 적당할까?]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색 놀이. 선놀이.
말씀하신 내용31개월 아이가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로 색놀이, 선놀이 하는 모습. 내가 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도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마지못해 시켜줬었는데 첫 번째에 제법 잘 하더군요. 아이들의 적응력은 봐도봐도 놀랍습니다. 이날 이후 아이 앞에서는 패드는 숨겨둡니다. 

보시는 것처럼 디지털 도구는 3살 아이도 몇 분이면 적응할 만큼 매혹적이고 쉽습니다.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고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낀 점은, 도구를 다룰 줄 안다고 해서 모두가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어떤 아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죠.


2. 이런 아이에게는 지금 추천하지 않아요

수업을 진행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은 디지털 드로잉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실력이 늘지 않아 금방 지치곤 합니다.

  • 연필로 선 긋기 자체가 힘든 아이: 기본적인 손 근육 발달이 부족해 연필 컨트롤이 안 되는 상태에서 매끄러운 유리 액정에 그리라고 하면, 아이는 조절되지 않는 펜 끝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실제로 이 단계에서 디지털부터 시작한 아이들 중 일부는 몇 달이 지나도 선 연습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지나치게 조급한 아이: 디지털은 ‘실행 취소’가 쉽다 보니,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대충 그은 뒤 지우기만 반복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그림보다 ‘기기’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경우: 그림을 그리기보다 브러시를 바꾸거나, 특수 효과 기능을 눌러보는 등 ‘기능’에만 치중하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경우 드로잉 실력 향상보다는 게임처럼 기기를 소비하게 됩니다.
  • 손그림(종이 드로잉) 경험이 거의 없는 경우: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연필로 꾹꾹 눌러 그려본 경험이 없으면, 디지털 특유의 편의성에만 의존하게 되어 기초 실력이 쌓이지 않습니다.

3. 반대로 이런 아이라면 해볼 만 합니다

반면,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어마어마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 종이 드로잉에 거부감이 없는 아이: 이미 종이에 그리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났을 때 이를 훨씬 더 풍성하게 활용합니다.
  • 관찰하고 따라 그리는 걸 즐기는 아이: 디지털 드로잉은 사진을 밑에 깔거나 참고 이미지를 옆에 띄우기 좋습니다. 관찰력이 좋은 아이는 이 기능을 통해 묘사력을 비약적으로 키웁니다.
  • 그림의 ‘결과’보다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 레이어를 쌓고 색을 섞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최고의 몰입도를 보여줍니다.

4. 결정 전, 부모님이 꼭 체크해야 할 3가지 질문

학원에 등록하기 전, 집에서 아이를 잠시 관찰하며 다음 질문에 답해 보세요.

  1. 우리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 ‘완성작’보다 ‘그리는 과정’을 즐기나요?
  2. 아이패드가 없을 때도 종이에 낙서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3. 그림이 뜻대로 안 그려졌을 때, 짜증 내기보다 다시 시도하는 편인가요?

만약 위 질문 중 하나라도 **”글쎄요…”**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디지털 드로잉 시작을 조금 더 미루셔도 좋습니다.


마무리 – 시기만 늦춰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디지털 드로잉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두 해 뒤처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종이 드로잉으로 충분히 기본기를 쌓고 넘어온 아이들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훨씬 빨리 안정감을 찾습니다.

아이의 성향을 무시한 채 유행에 따라 기기를 손에 쥐여주기보다, 지금 우리 아이의 손 끝에 필요한 것이 연필인지 애플펜슬인지 한 번 더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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