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있는데도 판타블렛 쓰는 이유|디지털 드로잉 장비 비교

저는 현재 현업 디자이너이자 디지털 드로잉 수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예비 수강생분들이 문의하실 때 가장 많이 묻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패드로 수업 안 하시나요?” 혹은 **”아이패드로도 충분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저도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모델과 애플펜슬을 보유하고 있고, 유료 드로잉 앱인 프로크리에이트도 당연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처음 샀을 때는 “이제 카페에서도 멋지게 그림을 그리겠지?”라는 환상에 부풀어 수많은 시도를 했었죠.

하지만 11년 차인 지금도 제 모든 메인 작업은 여전히 PC와 판 타블렛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비싼 아이패드를 두고 굳이 책상 앞에 앉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 3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11인치라는 공간의 한계: “그림은 역시 거거익선”

아이패드 프로 11인치는 휴대성 면에서는 최고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작업실’로 쓰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습니다.

어떤 그림이든 그릴 때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보면서 동시에 세부 묘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화면이 작다 보니 디테일을 그리려면 계속해서 캔버스를 확대해야 하고, 다시 줄이기를 무한 반복해야 하죠. 이게 한두 번은 괜찮지만, 작업 시간이 길어지면 금방 귀찮아지고 눈도 지칩니다.

프로크리에이트를 켜둔 나의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프로크리에이트를 켜둔 나의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휴대성은 최고지만, 메인 작업대로 쓰기엔 조금 아쉬운 11인치 화면입니다.

결국 저는 30인치 모니터를 보며 판 타블렛으로 슥슥 긋는 쾌적함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한쪽 모니터에는 시원하게 캔버스를 띄우고, 서브 모니터로는 각종 레퍼런스를 띄워놓는 그 짜릿한 여유는 아이패드가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2. ‘레이어 지옥’을 견디지 못하는 퍼포먼스

두 번째 이유는 레이어 관리의 불편함입니다. 프로크리에이트는 기기의 사양과 캔버스 해상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레이어 개수에 제한이 있습니다.

가볍게 낙서할 때는 체감이 안 되겠지만, 작업의 밀도를 높여 수십 개의 레이어로 쪼개서 작업을 늘려가다 보면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화면이 작으니 레이어 목록을 스크롤하며 내가 원하는 걸 찾는 데에만 한참 걸리죠. 소중한 작업 시간이 레이어 찾기로 다 날아가는 셈입니다.

PC 환경에서는 메모리만 충분하다면 레이어를 수백 개 쌓아도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습니다. 레이어 폴더를 만들고 관리하는 효율성 면에서 PC와 판 타블렛 조합은 압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왼손의 마법’ 단축키의 부재

이 부분이 가장 크리티컬한 포인트입니다. 제가 아이패드 작업에서 가장 크게 느낀 불편함은 바로 **’단축키’**입니다.

포토샵 같은 PC 프로그램은 왼손을 키보드에 얹고 수십 개의 단축키를 ‘반사적으로’ 누르며 작업합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기본적으로 제스처 중심입니다. 두 손가락으로 터치해 취소(Undo)하는 방식은 편해 보이지만, 브러시 크기를 조절하거나 레이어를 선택하고 툴을 바꾸는 모든 과정을 일일이 화면을 터치해 해결해야 합니다.

작업 책상 위의 와콤 타블렛 인튜어스 ptk640.
실제 작업 할 때 사용중인 인튜어스 ptk640. 오래썻 텍스트 표시부분에 줄이 가고 있습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하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고는 하지만, 아이패드에 키보드를 다는 순간 아이패드 특유의 ‘감성’이 반감되는 느낌이죠. 그리고 실제로 써보면 딱히 압도적으로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제대로 된 작업을 하려면 고민할 것도 없이 PC 전원을 켜게 됩니다.


결론: 그래서 나는 여전히 ‘판 타블렛’을 씁니다.

아이패드가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패드는 **’아이디어 스케치’나 ‘가벼운 드로잉’,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낙서’**에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여행지에서 구도를 잡을 때는 아이패드를 애용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만약 **’제대로 된 실력을 키워 수익화까지 고려하는 지망생’**이라면, 저는 우선순위를 PC와 판 타블렛에 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림의 기본기를 다지고 복잡한 작업을 해내는 데에는 결국 정석적인 환경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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